'낡은 편지 한 장'으로 시작 된 뜻깊은 만남

40년전 편지 한통으로 다시 만난 두 한글 운동가의 이야기

소희연 | 기사입력 2019/08/06 [10:16]

'낡은 편지 한 장'으로 시작 된 뜻깊은 만남

40년전 편지 한통으로 다시 만난 두 한글 운동가의 이야기

소희연 | 입력 : 2019/08/06 [10:16]

  어느 날 필자는 김슬옹 원장님이(58, 세종 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가치연구소 소장)40년 전에 한글 운동의 꿈을 키워준 편지의 주인공 주중식 선생님(68, 작가, 농사꾼, 전 샛별초등학교 교장)을 만나러 가신다는 말을 들었다.

▲ 40년 만에 만나게 된 한글 학자 김슬옹 원장님과 주중식 선생님     ©소희연

 

 긴 겨울 꽁꽁 얼어붙은 땅을 농부는 하늘에서 뿌려지는 빛을 거름 삼아 일구고 또 씨를 뿌리는 계절. 지난 1979년에도 그러했을 것이고 2019년에도 변함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또, 우리는 때로 보이지 않는 타임머신을 타고 기억 속으로 여행하며 지난날을 더듬어보기도 하는데, 197910월이면 필자는 세상에 태어난 해이지만, 한글 운동가 한 분은 편지 한 통을 받고 자신의 미래에 씨앗을 심은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원장님한테서 주 선생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 터라, 동행 취재 부탁을 받고 망설이지 않고 따라 나섰다.

 

  서울역

 

  2019328일 오전 840, 서울역에서 김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다소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긴장도 한 듯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일찍 나와 피곤하지 않으세요?"

 염려 가득한 원장님 물음에 웃음으로 인사하고,

원장님은 어떠셔요?”하고 물으니, 역시 웃음으로 답이 온다.

 이어 열차 시간이 되어 이동하는 길에 그는 앞으로 몇 시간 후면 만나게 될 40년 전의 그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준비해온 종이 몇 장을 건네주신다. 그 중 내 눈에 들어오는 낡은 한 장의 편지.

 

  19791027, ‘김용성 군에게보낸 글로 당시 한글만쓰기회사무국장이셨고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 (한길사, 2005)를 낸 주중식 선생님의 편지였다.

 

▲ 김슬옹 원장님의 고등학교 시절(1979). 한글 운동에 관한 주중식 선생님의 격려 편지     ©소희연

 

김 원장님이 낸 책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에서 한 부분 인용하면 이렇다.

 

 철도고 3학년 시절(1979) 신문에서 우연히 부산에서 한글기계화운동을 하시던 오창은, 주중식 선생님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어떤 신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음), 나도 그런 길을 가고 싶다고 편지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시다가 그만두고 오창은 선생님과 함께 한글기계화 운동을 하셨던 주중식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편지였다.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 김슬옹(2013)

 

 그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 인연은 이미 중학생 때부터 이름의 짜임새에 관심이 많았고 한자로 된 이름표에 불편함을 느껴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전국 국어운동 고등학생 연합회>에 참여를 하며 하나하나 다져놓은 한글을 향한 그의 마음 밭에 그를 한글학자이며, 한글운동가로서의 꿈을 키워주고 일구게 하여 준 하나의 씨앗은 아니었을까.

 

 한자로 된 이름표가 주는 불편함과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 의문을 품고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해 스스로 이름을 지어보게 된 그. 마침 한글 이름본이라는 글 집을 받아 보게 되고 뿌리에 대한 강한 그리움과 부를 때 훈훈하고 아무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으며, 우리다운 맛이 담겨 있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은 맛을 주는 그런 한글 이름을 스스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지어진 이름이 슬기롭고 옹골차게라는 글에서 첫 자를 따 김용성에서 김슬옹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구미 김천역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기차는 산천을 달려 오전 1030분에 구미 김천역에 도착하였고, 내리는 동안 옷매무새를 반듯이 정리하고 연신 호흡을 가다듬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듯이 보였다. 어찌 보면 40년 전 첫사랑을 만나는 듯한 설렘까지.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아마도 달리는 열차와 같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그 여백에 대하여 빠른 속도로 훑어 내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40년 전 그날과 바로 오늘을 말이다.

 

▲ 40년 만에 처음 만난 두 한글 학자의 모습을 담아주는 주 선생님 사모님     © 소희연

 드디어 역에서 내려서는 순간, 하차하는 승강장까지 직접 마중 나와 주신 주중식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대번에 알아보시고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셨다. 두 한글 학자에게는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겠다. 자신을 이끌어준 은사님과의 첫 만남이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눈빛과 마주한 손의 온기가 느껴짐에 코끝이 시큰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뭉클한 마음이 이는 건 예까지 걸어온 그 세월이. 그 삶들이 서로의 모습에서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 서로 모습을 담고는 주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직접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샛별초등학교로 이동을 하였다. 가는 동안에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40년의 여백을 가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다정했고 따스했고 반가움이 아닐 수 없었다.

 

 거창에서 구미 김천역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임에도 두 분께선 일찍이 출발하시어 기다리고 계시며 있었던 뒷이야기며 지금 계신 곳 거창에서의 삶이며. 달리는 차량 안에서 40년의 세월안에 고스란히 담긴 삶은 그렇게 서로에게 오고 또 가고 있었다.

 

 샛별초등학교

 

▲ 샛별초등학교 담장에 붙은 아이들 그림 타일     ©소희연

 

 주중식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간다고 하였더니, 주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계셨던 샛별초등학교와 한 울타리 거창고등학교에 특강을 마련해 주셨다.

 그 뜻 깊은 만남을 이어가고 특별한 시간을 위하여 <샛별초등학교>로 이동.

 

▲ 샛별초등학교 교장실에서     ©소희연

 참교육 실천학교로 그 시작의 문을 여신 주중식 선생님. 학교 입구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한 타일에 그려진 그림 작품들이 줄지어 있었고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다양한 공간들이 연출되어 있었다. 공간에 대한 이름 또한 도서관은 옹달샘급식소는 하늘샘등의 한글 이름으로 안내되어 있었는데 지나는 아이들에게 이름이 어떠한지 물으니

 

저희 학교지만 예쁘지 않아요?”

 

라고 오히려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였을까 아이의 그 모습 속에선 뿌듯함과 행복함이 자신감 있게 보이기도..

 

 교무실로 이동하여 서성애 교장 선생님과 송준섭 교감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송준섭 교감 선생님은 그와 고등학교 시절 한글 운동을 같이 하던 후배였다고 한다. 무척 반가워하는 또 다른 한글 운동가 두 사람. 인연은 이렇게 다시 이어지는가 보다. 그리고 이어 아이들이 있는 강당으로 이동하여 1140분부터 매우 즐겁고 유쾌한 한글 이야기를 시작.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재치 있는 입담에 아이들은 환호하기도 하고 하하 호호 춤의 매력에 빠져 함께 춤을 추기도 한 샛별초등학교 아이들.

 

▲ 김 원장님의 한글 이야기에 푹 빠진 샛별초등학교 4, 5, 6학년 아이들     © 소희연


  모두에게 이날이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또 다른 한글학자를 꿈꾸는 어린이가 나오기를 소망해 보기도 했던.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학교 식당 하늘샘에서 아이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두 한글 운동가의 대화는 멈추질 않았고, 우리는 주 선생님의 제안으로 거창과 그곳에서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농사꾼 주중식 선생님의 농사 일터

 

 거창고등학교 특강 시간까지는 다소 시간이 남아 주 선생님은 사모님과 수시로 들르며 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며 감자밭과 비닐하우스를 소개해주었고 오후 2시부터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살고 싶어진다며 주위를 둘러보고 감탄하는 그.

 

 그도 이런 삶을 꿈꾸고 있으리라.

 

▲ 농사꾼과 한글 학자     © 소희연

 이동하는 길에 핀 진달래꽃에 감탄하는 사모님 모습에서 소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두 분께서 도란도란 건네시는 말씀에 오랜 친구 같은 모습도 느꼈다. 또 간간이 묻고 답하는 그와 주 선생님의 모습에선 떨어진 세월은 오래지만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역시나 우리말 그리고 우리글이구나..싶던 순간들.

 

▲ 감자 심은 밭이랑     © 소희연

 그렇게 어느덧 도착하여 감자밭과 하우스로 가는 길에 작은 꽃 하나 작은 풀 하나를 설명해주시는 주 선생님의 모습에선 아이 같은 밝은 천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저것 묻는 필자에게 보내오는 따스한 미소와 새로 오르는 생명의 기운을 보며 힘을 내시기도 한다는 말씀. 손을 거쳐 땅위로 오르는 모습들을 보면서

 

  올해 감자 캘 때 김슬옹 박사와 꼭 다시 내려오세요.”

 

 라는 말씀이 울림으로 남던 순간. 시간은 다시 흘러 특강 시간에 맞추기 위해 가까운 주 선생님 집으로 이동본격적으로 두 한글 운동가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했던.

 

 주중식 선생님 집 방문

 

▲ 주중식 선생님 집에서     © 소희연

 오후 310, 소박한 집안 풍경. 사모님께서 내어주신 차와 과일을 사이에 두 고 편지를 주고받은 이야기부터 그간의 삶과 지금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 자리. 주 선생님께서 모아오신 한글운동관련 서적들이 한쪽에 오랜 시간 자리한듯이 보이고 어린이에게 드리는 이야기 선물책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이 담긴

▲ 주중식 선생님 책 <잘 배우는 길(2016. 현북스)>     © 소희연

질문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주 선생님의 답변이 담겨 있는 <잘 배우는 길(2016)>을 우리한테 선물로 주시는 모습에선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 있어 그저 송구스럽기만 했다. 이어 그는 주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거창고등학교로 출발.

 

 

(YouTube_https://www.youtube.com/watch?v=zUm6nqgkXLo)

 

 거창고등학교 교장실

 

▲ 김슬옹 원장님 책을 읽고 메모한 박종원 교장 선생님 수첩     © 소희연

오후 330, 사뭇 다른 분위기의 교장실이다. 권위적인 소파도 테이블도 의자도 없다. 사무실에 흔한 책상과 작은 테이블 하나. 그리고 책꽂이....

  

 회의 상 긴 테이블이 있긴 했지만, 박종원 교장선생님만의 공간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하게 보였고 권위주의적이어서 다가서기 어렵기보다는 언제고 툭하니 곁에 가서 서있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례적이라고 그도 말을 하고 그 말에 나 역시 공감. 그런 중 교장 선생님께서 오셨고 세 분의 대화가 이어졌다.

 

▲ 박종원 교장선생님과 함께     © 소희연

 

 직접 받았던 40년 전의 그 편지를 꺼내 보여주시기도 하고 마침 책을 읽고 있었다며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를 읽고 또 메모까지 하고 계셨던 교장 선생님. 그 모습에 우리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고 직접 보여주신 메모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에게는 더욱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으리.

 

 

 

거창고등학교 강당

 

▲ 이 편지 한 장 인연으로...     © 소희연

 오후 420, 거창고등학교 1, 2, 3학년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인 강당.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으로 그 자리에 올랐을까. 40년 전 편지 속 주인공이신 은사님이신 주중식 선생님과 강당 위 단상에 나란히 선 두 사람. 무척이나 가슴 벅차 하면서도 담담하게 학생들에게 소개하고는 주 선생님 앞에 큰 절을 올리는 김슬옹 원장. 이어 주 선생님도 함께 맞절로 반겨주시던 그 순간. 환호성이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박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 마음이었을까. 단상위의 두 한글 운동가의 모습을 담으며 솟구쳐 오르는 이 울컥함은 뭘까...

 

 

▲ 큰절 올리는 김 원장님     © 소희연

 이어 그로 인하여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차분차분 걸음 걷듯이 안내를 하고 우리가 왜 우리글을 소중히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과 우리가 가져야 할 자부심에 대하여. 그리고 앞으로 이어가야 할 과제에 대해서 유쾌하고 때로 진지하게 호소하듯이 쏟아내는 모습에 환호와 박수로 꽉 찬 시간.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시는 주 선생님의 미소가 담긴 모습과 단상 위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 열정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 거창고등학교 특강을 마치고 환호하는 학생들과 함께     © 소희연

 

헤어지는 자리

 

 오후 6, 주 선생님 내외분과 박종원 교장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하고 이내 곧 헤어진 자리.

 

 지금까지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걸어갈 그 길.

 외롭지 않게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그의 곁에 있기를.

 

 누군가의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어 줄 수도 있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흔들려도 꺾이지 않고 굳은 신념과 이념으로 걸어왔을 그 길그렇게 두 한글운동가의 만남은 해가 저물 듯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봄이 지나 여름이 길목에 다다를 즈음 감자를 캐는 걸로 다시 인연을 이어가자는 이야기로 여운을 남겼다.

 

 동행을 하는내내 인연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 낡은 편지 한 장이 씨앗이 되어 가슴에 심어지고 그 것을 잘 자라나게 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의 과정.

 

 지금도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아름다운 두 사람. 그들이 맺어온 것이 진정 인연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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